김영수 Kim, Young Soo
선박부 기록
국민보 20건
사진신부 3건
이민 당시 나이
24세
출신지
Kyeng Choo
탑승 선박
China호
도착일
4/26/1904
결혼 상태
single
사진신부 기록
연대기
4/26/1904
China호를 타고 하와이 도착
(24세)
출처: 선박부 기록
1960-07-20
해방 후의 민족자서
(계속)
(一九四六년 六월 (민성) 제二권 제七호 소재) 친일파 문제에 있어서 우익을 옹호하고, 좌익만을 공격해야 할 의무를 갖지 않았기에 나는 (민성) 제三권 一월호 권두사설에 [북조선(북한)과 남대한(한국)]이라는 제목 아래 다음과 같은 글을 발표했었다.
[남대한(한국)이 북조선(북한)보다 더 좋으냐?]
북조선(북한)이 남대한(한국)보다 더 좋으냐...
출처: 국민보
1956-07-04
빨갱이로 오인된 슬픔의 기자 도지사를 몰아낸 유쾌한 기자
합동통신사에 있을 때의 일이다.
지금은 통신사라면 대개 무엇을 하는 곳인지 모르는 사람이 드물겠지만 그때만 해도 통신사를 모르는 것은 보통이었다.
어떤 여학교에 기사취재차 방문한 통신사 기자의 명함을 보고 그 학교장은 다짜고짜 전화 고칠 것이 없습니다. 하고 일축한 에피소드가 있는 것은 저간의 사정을 잘 말해주고 있다.
통신사가 (뉴스)를 도매하는 곳...
출처: 국민보
1956-07-04
방랑기자의 수첩 권총피습 기생때린 도지사 견습기자
합동통신사에 있을 때의 일이다.
지금은 통신사라면 대개 무엇을 하는 곳인지 모르는 사람이 드물겠지만 그때만 해도 통신사를 모르는 것은 보통이었다.
어떤 여학교에 기사취재차 방문한 통신사 기자의 명함을 보고 그 학교장은 다짜고짜 전화 고칠 것이 없습니다. 하고 일축한 에피소드가 있는 것은 저간의 사정을 잘 말해주고 있다.
통신사가 (뉴스)를 도매하는 곳...
출처: 국민보
1953-07-22
영남부인회에서 김영수 의사 의학책 출판비로 二천원을 기부
미주 일리노이의 의학과에서 연구과로 二十一삭간 있던 김영수 의사는 환국하는 길에 호항(호놀룰루)에 들렀는데 씨는 특히 (두뇌)머리병에 대한 연구를 하고 머리병에 대한 책자를 저술하였는데 영남부인회에서는 이 책자를 발간하여 우리 한국 인민에게 큰 도움이 되리라는 의미에서 미화 二천원을 기부하고 사사로이도 몇 백원씩 기부하는 이 있다 하니 국민보는 이 책이 발...
출처: 국민보
1953-07-15
七月 九日
김영수 의사는 특별수술과를 더 연구키 위하여 미국에서 이 년간이나 유하며 일리노이의 학교에서 얼마간 더 연구하였고 一九五一年 태평양의과회의에 한국 의사로 김영수 씨만이 참석하였다 하며 오늘 비행기로 일본을 거쳐서 부산으로 전왕한다 하며 씨는 (두부)머릿병에 대하여 책을 저술하였는데 수월 내로 이 책을 발간하여 의사와 간호부들께 도움이 되리라 하였더라....
출처: 국민보
국민보 관련 기사 (20건)
1960-07-20
해방 후의 민족자서
(계속)
(一九四六년 六월 (민성) 제二권 제七호 소재) 친일파 문제에 있어서 우익을 옹호하고, 좌익만을 공격해야 할 의무를 갖지 않았기에 나는 (민성) 제三권 一월호 권두사설에 [북조선(북한)과 남대한(한국)]이라는 제목 아래 다음과 같은 글을 발표했었다.
[남대한(한국)이 북조선(북한)보다 더 좋으냐?]
북조선(북한)이 남대한(한국)보다 더 좋으냐? 그러한 승강을 붙여보는 것을 향락하려는 것은 아니다. 해방 직전까지 일본 헌병대의 주구로 일본인 이상이던 자가 거리를 활보하고, 혁명투사와 애국지사를 악형 치사케 하던 고등계 ...
1956-07-04
빨갱이로 오인된 슬픔의 기자 도지사를 몰아낸 유쾌한 기자
합동통신사에 있을 때의 일이다.
지금은 통신사라면 대개 무엇을 하는 곳인지 모르는 사람이 드물겠지만 그때만 해도 통신사를 모르는 것은 보통이었다.
어떤 여학교에 기사취재차 방문한 통신사 기자의 명함을 보고 그 학교장은 다짜고짜 전화 고칠 것이 없습니다. 하고 일축한 에피소드가 있는 것은 저간의 사정을 잘 말해주고 있다.
통신사가 (뉴스)를 도매하는 곳인 줄 아는 사람은 실상 따지고 보면 그리 많지도 않은 상 싶다.
하루는 서울 지방법원 대법정에서 김구선생 살해범에 대한 고등군법회의가 열렸다. 워낙 세간의 화제를 일으킨 대사건...
1956-07-04
방랑기자의 수첩 권총피습 기생때린 도지사 견습기자
합동통신사에 있을 때의 일이다.
지금은 통신사라면 대개 무엇을 하는 곳인지 모르는 사람이 드물겠지만 그때만 해도 통신사를 모르는 것은 보통이었다.
어떤 여학교에 기사취재차 방문한 통신사 기자의 명함을 보고 그 학교장은 다짜고짜 전화 고칠 것이 없습니다. 하고 일축한 에피소드가 있는 것은 저간의 사정을 잘 말해주고 있다.
통신사가 (뉴스)를 도매하는 곳인 줄 아는 사람은 실상 따지고 보면 그리 많지도 않은 상 싶다.
하루는 서울 지방법원 대법정에서 김구선생 살해범에 대한 고등군법회의가 열렸다. 워낙 세간의 화제를 일으킨 대사건...
1953-07-22
영남부인회에서 김영수 의사 의학책 출판비로 二천원을 기부
미주 일리노이의 의학과에서 연구과로 二十一삭간 있던 김영수 의사는 환국하는 길에 호항(호놀룰루)에 들렀는데 씨는 특히 (두뇌)머리병에 대한 연구를 하고 머리병에 대한 책자를 저술하였는데 영남부인회에서는 이 책자를 발간하여 우리 한국 인민에게 큰 도움이 되리라는 의미에서 미화 二천원을 기부하고 사사로이도 몇 백원씩 기부하는 이 있다 하니 국민보는 이 책이 발간됨으로 우리 민중에 큰 효과가 있기를 바란다....
1953-07-15
七月 九日
김영수 의사는 특별수술과를 더 연구키 위하여 미국에서 이 년간이나 유하며 일리노이의 학교에서 얼마간 더 연구하였고 一九五一年 태평양의과회의에 한국 의사로 김영수 씨만이 참석하였다 하며 오늘 비행기로 일본을 거쳐서 부산으로 전왕한다 하며 씨는 (두부)머릿병에 대하여 책을 저술하였는데 수월 내로 이 책을 발간하여 의사와 간호부들께 도움이 되리라 하였더라....
1951-08-01
김창운 씨 신고
힐로 김창운 씨 (본항 치과의사 김영수 씨의 부친)은 본래 기력이 강장하기로 유명한터인데 최근 수년간 노년 기약으로 발의 부중이 있어서 신고하였는데 동지병원에 입원하여 의사의 자세한 진찰을 받은바 무슨 별병중이 있지 안하고 다만 한양을 요구하는 것이라 하여 퇴원한 후에 그 사택에서 조리 중인 바, 일변으로 집에서 쉬기가 너무 갑갑도 하고 또 일변으로 二十八 년 동안 한 자리에서 하던 사업을 버리기가 섭섭하여 그 사업 처소에 아직은 매일 다니나 아마 그것을 그만두고 휴양하게 되리라는 것이 그 자녀들의 원하는 것이요, 또 노년의 자연한...
1950-03-22
고 김영수 씨의 소상
三월 十五일은 고 김영수 씨의 송상인 고로 그 부인 김차순 씨는 자기의 사랑하는 돌아가신 가장을 기념하기 위하여 맛있는 음식을 준비한 후에 고 김씨의 친우들 중에 특별히 형제회우들과 감년회우들과 국민회원들과 부인국민회원들과 교회 친우들을 청한 후에 감리교회 정 목사의 축사가 있은 후 회중이 고 김씨의 사교간 정의를 다하시던 분의 정의를 기념하였다더라....
1949-05-25
국민회 호상부원에게
금년 一월로 위시하여 지금 오월 십오일까지 사망하신 분은
김갑성, 김치옥, 김영수,
김순이, 이상선, 이관섭,
임학규
합 칠인이 별세하였습니다. 이상 사망인 칠인에 대한 호상금을 미납하신 호상부원은 호상금을 신속히 총재부 이명우 씨께 보내주시오. 만일 이명우씨께 전하시기가 관리치 못하시면 팔라마 박춘경 씨께나 호항(호놀룰루) 지방회장 김신환 씨께로 전하여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지출은 거대하고 수입은 가뭄에 콩나듯 하여 본부 사정을 고하는 바이옵니다. 일반호상부원은 조랑하심을 경요....
1949-05-04
호상부원 제씨에게
김치옥 씨, 김영수 씨 의에 三월 二十七일 김순이(서달근 씨 빙모) 씨의 별세하신 부고를 전달합니다....
1949-04-27
호상부원 제씨에게
김치옥 씨, 김영수 씨에 三월 二十七일 김순이(서달근 씨 빙모) 씨의 별세하신 부고를 전달합니다....
가족 관계도
가장
김영수
24세
남편
김영수
어머니
김송의
함께 승선한 동향 사람들 China호 (4/26/1904) · Kyeng Choo 지역 1명
이유생
17세
Kyeng Choo